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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 항공사 기술 적인 문제가 아니라 경영문제라고? 보잉이 몰락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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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37회 작성일 24-10-30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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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탑승객 수 300억 명, 총 비행시간 3억 6천만 시간.

전 세계 인구를 4번씩 태우고 지구를 680만 번 넘게 돈 것과 같다는 1.5초마다 활주로에 이착륙하는 비행기 보잉 737.

효율적인 이기장 시스템 33 베어를 도입해 전 세계 항공사의 러브콜을 받았고, 가성비 넘치는 비행기로 설계돼 티켓 가격도 낮춰서 저가 항공을 가능하게 한 지구촌 시대의 공신이기도 하죠.

하지만 확률이 100만 비행당 0.33회라는 완파 사고가 5개월 만에 2번이나 일어나서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참사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이어진 크고 작은 사고들로 인해 보잉 그리고 737의 이미지는 추락해 버렸는데요.

전 세계 항공사의 불신을 사서 이제는 경쟁사인 에어버스에게 밀리고 있습니다.


에인 보잉, 에인 보잉 보잉이 아니면 타지 않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기술력과 안정성을 인정받으며 한때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비행기로 기네스북까지 올랐지만 이제는 가장 위험한 비행기가 되어버린 보잉 737 전문가들은 보잉의 추락을 기업이 아닌 경영의 실패라고 보고 있는데요.

그 이유가 뭘까요? 여객기 아이콘 보잉 737의 흥망성쇄를 아이코닉에서 정리해 봤습니다.


자동차 중에서도 이목을 끌고 인기가 많은 건 고급 대형차, 또 화려한 스포츠카인데 막상 사람들이 제일 많이 타고 또 브랜드에게 매출을 가장 많이 가져다주는 그런 대표하는 차라고 하면 아무래도 중소형 차잖아요.

비행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의 여왕이라고 불린 보잉 747, 현존하는 쌍발기 중 가장 큰 보잉 777 이런 비행기가 있지만 보잉을 대표하는 스테디셀러는 바로 보잉 737이죠.

그런데 이게 처음부터 그 존재감이 컸던 건 아니라고 합니다.

보잉 737이 탄생한 1960년대는 기존 이런 프로펠러 여객기에서 더 빠르고 더 멀리 가고 더 조용한 제트 여객기 시대로 바뀌면서 비행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수요가 점점 많아진 때인데요.

보잉은 최초의 미국산 제트 여객기인 보잉 707을 내놔서 성공을 거두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에는 큰 도시 또 이 먼 거리를 다닐 수 있는 비행기는 꽤 있었는데 그 큰 도시에서 다시 중소도시 혹은 유럽의 국가 사이를 다닐 수 있는 중단거리용 제트 여객기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다고 해요.

지방공항 같은 경우는 규모가 작아서 오잉 707, 727 같은 기존의 좀 큰 비행기가 취항하기가 어려웠고 또 활주로가 짧다 보니까 비행기가 뜰 때까지 활주로 할 거리가 좀 부족했습니다.

여객 수요도 그런 작은 공항들은 많지 않다 보니까 큰 비행기 띄우기에는 남는 게 없었던 거죠.

이런 상황에서 보잉의 경쟁사인 맥도널 더글라스가 단거리 소형 여객기인 92인승의 DC 9인을 출시했고, 영국의 bac 일레븐까지 미국에 진출하면서 중단거리 여객기 시장에서 보잉이 설 자리를 위협받게 됩니다.

위기를 느낀 보잉은 뒤늦게 중단거리 비행기 개발을 시작하는데 이래저래 어려움이 많았다고 해요.


내부적으로는 대형 프로젝트인 보잉 2707 초음속 여객기와 747을 동시에 개발하는 중이어서 투자 자금도 넉넉하지 않았던 상황이라고 하고요.

그래서 737의 주문을 미리 받으려고 하니까 미국의 4대 대형 항공사 중에 아메리칸 델타항공은 이미 경쟁사의 비행기를 구매한 상태였고, 또 유나이티드 이스턴 항공도 더글라스 DC 9인을 사기로 결정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고객을 찾지 못한 보잉이 찾은 돌파구는 바로 유럽이었는데요.

그중에서도 단거리 노선의 수요가 많은 서유럽에서 열심히 영업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어렵게 유치한 첫 고객이 바로 독일의 루프트한자였는데 루프트한자는 프랑스의 슈드 카라벨, 영국의 bac 일레븐이 아닌 10인승 여객기를 찾던 중이었다고 합니다.

보잉 737의 첫 계약을 따내기는 했는데 루프트 환자도 비행기가 이렇게 많이 필요한 상태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딱 21대만 주문을 넣었대요. 그런데 개발을 하고 있는 보잉 입장에서는 최소 100대 정도는 계약을 해야 소위 이제 안전방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뭐 어쨌든 루프트 환자 덕분에 737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된 보잉이 미국으로 돌아와서 이 100대의 계약을 목표로 머리를 굴려봅니다.

그리고는 결국 유나이티드 항공에서도 추가 주문을 받아냈는데요.

만약에 지금 737을 계약해주면 우리가 737 만들어서 납품할 때까지 727 공짜로 쓰게 해주겠다 이렇게 파격적인 딜을 제안을 했다고 해요.

유나이티드 같은 경우는 원래 보잉에서 비행기를 탈 생각은 아니었는데 또 뭐 그렇다고 다른 데랑 또 계약을 한 상태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에 믿을 것 없는 보잉의 제안을 받아들였고요.

확정 40대 옵션 30대 계약이 체결됩니다. 루프트한자 21대, 유나이티드 70대 그렇게 총 91대 주문을 확보한 보잉은 개발을 시작을 했고 1967년 보잉 737이 탄생을 하게 됩니다.


보잉은 이제 737의 가격과 무게를 낮추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했습니다.

먼저 보잉사 최초로 2인 조종이 가능하도록 비행기 조종석의 레이아웃을 바꿨는데요.

원래는 이제 조종실 안에 3명에서 혹은 많게는 4명까지 탔다고 해요.

기장 부기장이 있고 비행 엔지니어랑 항법사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기술이 좋아지다 보니까 기장과 부기장만으로 비행이 가능해진 거죠.

보잉은 2인으로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6일 동안 혼잡한 구간이죠.

보스턴과 워싱턴 구간을 40번이나 비행을 해서 여러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FAA의 승인을 받았고요. 엔진도 2개만 달았는데 기존의 707은 엔진이 4개, 727 이렇게 3개였거든요.

가격을 더 낮추기 위해서 엔진의 개수를 줄였고 그 크기도 처음에는 작았다고 해요.

그래서 자세히 보면 보잉 737의 기체가 경쟁 기종인 에어버스 a320보다 좀 낮은데요.


나중에는 엔진만 좀 커지면서 마치 찐빵 만두같이 미국에서는 이제 햄스터 파우치라고 불릴 정도로 귀여운 모양이 되기도 했습니다.

엔진이 엔진을 메인 날개인 주익 밑에 단 덕분에 기체 앞뒷물의 접근성이 확보되는 장점이 있었고 33 배열 6인승 좌석이 가능해졌다고 합니다.

무게도 많이 줄어서 2만 5천 kg으로 출시됐습니다.

보잉은 항공사의 요구에 맞춰서 비행기를 개조하거나 또 변형을 해주기도 했는데요.

필요에 따라 여객용 화물용으로 바꿀 수 있는 컨버터블 버전도 개발을 했고, 자갈 활주로에 착륙할 수 있는 스트립 키트는 캐나다나 알래스카 같은 지역의 항공사에서 인기였다고 해요.

처음에는 주문량을 겨우 맞추는 수준이었던 737은 갈수록 인기가 많아져서 1993년에는 3천 대 넘는 주문을 받았고요.

같은 해 보잉은 737의 3세대인 넥스트 제너레이션을 발표합니다.

이번 달부터는 이제 글라스 카펫이 적용이 됐는데 기존에 복잡했던 아날로그 게시판을 디스플레이로 바꿔서 조정이 훨씬 편리해졌죠.


넥스트 제너레이션은 엄청난 인기를 끌어서 기록적인 판매량을 올렸는데요.

2012년에 1만 대 이상 주문을 돌파한 최초의 상업용 항공기가 됐습니다.

덕분에 보잉 737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여객기라는 타이틀을 더 확고하게 굳쳤고요.

이때 전체 여객기의 3분의 1이 737이었고, 전 세계에서 2초마다 1대씩 737이 이착륙하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40년 넘게 737를 우려먹고 있었기 때문에 보잉은 새로운 기종을 만드는 y1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는데요.

결과적으로는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에어버스 a320의 압박으로 프로젝트를 보류하고 맙니다.

이렇게 또 새로운 비행기를 만드는 대신에 737을 또 한 번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을 택한 보잉은 2011년 4세대인 737 맥스를 내놓습니다.


보잉은 연료 효율성이 좋은 a320에 맞서기 위해서 더 크고 더 좋은 엔진을 달아야 했는데 문제는 앞에서 설명했듯이 73초 기체가 낮아서 큰 엔진을 달던 자리에 달면 이게 땅에 닿아버린다는 거였죠.

그래서 렉스는 앞쪽 랜딩 기어 길이를 좀 늘렸고 엔진을 날개 앞쪽에 좀 더 앞쪽에 닿는 형태로 디자인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고 나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보니까 비행기의 공기 역학이 약간 바뀌어서 이렇게 가야 되는데 어떤 상황에서 이렇게 들리는 거예요?

객체가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보잉이 엠카스라는 안전 시스템을 고안을 했는데요.

이 비행기 코가 너무 높게 올라가면 센서가 이걸 감지해서 자동적으로 아래로 살짝 밀어내는 기술이었죠.

근데 보잉이 엠카스의 존재를 항공사 조종사들에게 알리지 않고 비밀로 합니다.


새로운 기술이 왜 생기면 교육을 해야 되고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이 또 필요하다 보니까 그러다 보면 항공사에서 꺼리게 됩니다.

그 비행기를 좀 더 수월하게 팔기 위해서 그걸 비밀로 하게 되죠.

그리고 보잉 내부에서도 거의 극한의 비행 상황에서만 작동될 거다라고 예상을 했고 그렇게 큰 문제로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해요.

그렇게 탄생한 보잉 맥수는 정말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는데 출시 직후에 주문이 5천 대 넘게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러던 2018년 10월 29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앞바다에서 보잉 맥스 에잇이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납니다.

수카르노 하타 공항에서 데파티 아미르 공항으로 향하던 라이언에어 610편이 이륙한 지 13분 만에 추락한 거였는데요.

탑승자 189명 전원이 사망한 대참사였죠. 보잉은 사고 직후부터 조종사 때문에 사고가 난 거다라고 말을 했지만 조사 결과 보잉이 알리지 않았던 엠카스 때문에 비행기가 추락한 것으로 밝혀집니다.


조종사가 조종하지 않았는데도 소프트웨어가 동체를 아래로 낮춰서 추락하게 된 거였죠.

게다가 이제 엠카스는 센서 하나만으로 작동됐는데 이게 중복성이 정말 중요한 항공 분야에서는 말이 안 되는 점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비행기 기장과 부기장이 식사까지 다른 걸 먹는다고 해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그리고 센서가 중복이 돼야 된단 말이에요.

우리가 예를 들어 귤을 사왔어 양치하고 나서 귤을 먹으면 귤이 맛이 없어서 이 귤을 버리려고 했는데 야 너 방금 양치해서 그래 내가 먹어볼게 맛있어 이런 식으로 센서가 중복이 돼야 되는데 센서를 하나만 했던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비행기가 잘 날고 있는데 이 센서가 야 좀 내려야 될 것 같아 이 조종사는 계속 올리려고 하고 댄서는 계속 낮추려고 하다 보니까 실제로 항로 그래프를 보면 고도를 계속 올라갔다 내려갔다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다가 10몇 분 만에 추락하는 그래프가 나와 있습니다.


이게 이제 새로운 모델을 출시를 하면 새로운 또 면허가 필요하고 또 이제 새로운 교육과 새로운 또 시험이 필요하고 여러 가지 비용이 발생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증축을 계속하고 있는 거예요. 새 건물을 지으면 화장실을 다시 만들어야 되고 배수관을 해야 하고 이러는데 그냥 있던 거에 조금 늘리고 늘리고 늘리고 하다 보니까 결국에는 이제 역학적으로도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이게 이제 한 번으로는 비행기의 문제다 혹은 조종 미숙이다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추락 사고가 한 번 더 일어납니다.

인도네시아 추락 사고가 일어난 지 5개월 만인 2019년 3월, 이번에는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에티오피아 항공 et302편이 이륙한 지 6분 만에 추락해 157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사고 원인이 인도네시아 때와 똑같은 소프트웨어 문제로 밝혀졌고요.


이렇게 두 건의 완파 사고가 일어난 후에 보잉 그리고 737의 품질이 의심을 받기 시작했고, 결국 보잉의 경영 문제가 세상에 드러나게 됩니다.

안전이 우선이던 보잉이 바뀌기 시작한 건 2천년대 초였다고 해요.

90년대 말에 바짝 뒤에서 쫓아오는 유럽의 에어버스를 견제하던 보잉이 미국 내에서 오랜 라이벌이었던 맥도널 더글라스와 합병을 했고요.

더글라스 출신의 경영진들이 보잉의 수장으로 올라서게 됩니다.

그런데 보잉은 태초부터가 엔지니어가 만든 회사였고 엔지니어 중심으로 비행기를 만들던 곳이었는데요.

그런데 이때부터는 엔지니어가 아닌 경영 전문인 인물들이 보잉을 장악해버리게 되는 거죠.

그리고 회사 역시 안전 품질 이런 것보다 실적 주가를 우선해서 돌아가게 되고요.

그러면서 가족적이고 프렌들리 했던 기업 문화는 좀 딱딱하게 바뀌면서 또 본사도 시애틀에서 시카고로 옮겨지는데 이건 기존 엔지니어들과 경영진이 거리를 두기 위해서 감행된 거라고 해요.


경영진들은 비행기의 완성도보다 제작 단가 이런 걸 낮추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을 했고, 엔지니어들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보다 빨리 설계를 끝내라고 강요했고, 또 1만 2천 명 정도를 해고하기도 했죠.

이때부터 수백만 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비행기가 외주로 분할이 돼서 만들어지기 시작하는데 그때 품질 검증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당시 직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비행기를 좀 빨리 팔기 위해서 기존에 있던 품질 관리자가 제작 과정에서 배제가 됐는데 원래 15명 정도였던 품질 관리자가 1명인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항상 안전을 우선으로 하면서 이에 대한 걱정을 나누는 게 일상이었던 보잉 문화가 정말 정반대로 달라졌다고 하죠.

당시 알자지라 방송에서 보잉 내부를 촬영한 히든 킴을 보면 작업자들이 시간이 없어서 랜딩기어 끼움새를 넣지 않았다.

뭐 이런 대화가 오갔고 그 말을 들은 직원이 충격을 받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2020년 초에 공개된 내부 문서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기도 했어요.

광대들이 설계한 다음에 원숭이들이 감독한다. 결국 두 번의 대형 참사가 발생한 이후 보잉 737 맥스는 전 세계적 운항이 중단됐고요.

당시 미국 대통령이 737 맥스의 운항을 중지시키는 긴급 명령이 발표되기도 했죠.

미국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다고 합니다.


올해까지도 보잉은 큰 사건 사고를 냈습니다. 이륙 준비 중에 앞바퀴가 떨어져 나가거나 또 엔진에 불이 붙은 채로 비행 중인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고요.

비행 중에 창문 벽체 일부가 뜯겨나가서 비상 착륙을 하는 일도 있었는데 비행기 문에 볼트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사고 원인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안전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는 보잉은 많은 걸 잃었습니다.

주요 고객사였던 유나이티드 항공, 또 우리나라의 대한항공을 비롯해서 전 세계의 여러 항공사에서 보잉 737의 신기종을 거절하면서 에어버스를 택했고요.

비행기 판매량은 결국 에어버스에 추월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지난해 에어버스가 받은 신형 비행기 주문 건수가 2319대였는데 이건 보잉보다 1.6배 많은 수치고요.

올해 초 인도량도 에어버스가 보잉을 훨씬 앞질렀습니다.

결국 경영진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주가는 한때 20% 넘게 폭락하기도 했고요.


보잉의 추락은 우리에게도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에어버스가 독주하는 형태로 흘러가면 항공산업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고, 비행기 티켓 값도 지금보다 더 오를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보잉은 벌써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안전 문제를 해결하고 불신을 지우기 위해서 나름 노력하고 있는 모습인데요.

특히 올해 보잉의 수뇌부가 대거 교체됐는데 지난 8월에는 엔지니어 출신인 로버트 오트버그가 CEO로 올랐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대규모로 해고됐던 숙련된 베테랑 기술자들이 보잉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 등 아직은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보잉의 실패가 기업의 실패가 아닌 경영의 실패라고 꼬집었는데요.

보잉 그리고 737은 사람들의 불신을 지우고 재기에 성공해서 다시 항공업계의 아이콘이 될 수 있을까요?

앞으로 더 지켜봐야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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