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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없었다면 못먹었을 수원 왕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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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88회 작성일 24-10-07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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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이 대사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텐데요. 영화 극한 직업의 명대사로 극중에서 불티나게 팔렸던 수원 왕갈비 통닭의 전 안내 멘트이기도 한데요.

실제로 수원이라는 지역과 왕갈비는 아주 깊은 역사적 관계가 수원 화성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이전하고 그곳에 살던 백성들을 이주시키면서 만 신도시 정조는 수도로 가는 길목이자 전략 요충지인 수원 화성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군사적 역량을 높이고자 했는데


저 타워를 보시면 제가 이렇게 앞으로 돌출돼 있잖아요.

그러면 앞으로 오는 애들도 공격할 수 있고 뒤로 이미 이쪽으로 오는 이 성문을 공격할 애들도 공격할 수가 있게 되거든요.


과거 나라에서 성을 쌓을 때면 많은 백성들이 부역으로 동원되고는 했어요.

월급도 없이 돌을 쌓아올리는 것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죠.

그런데 정조는 임금도 제대로 제공, 정약용의 거중기 발명으로 인력도 줄이고 소요 기간도 확 단축시켰죠.

그뿐만 아니라 정조는 화성 건립과 백성들을 위해 다양한 복리후생 제도를 선보였는데요.


수원 화성이 이제 도시가 설립되면 건립되면 여기 살아야 할 백성들이 있잖아요.

이사비 이주 비용도 지원해 줬어요. 여기는 군사도시이기 때문에 군부대에서 사용할 먹거리를 재배하는 데 직접 농민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해줬고 농사를 잘 짓게 하기 위해서 소를 또 분양해줬어요.


소가 많아지자 거래를 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국내 최대의 우시장이 생겨나기도 했어요.

사실 당시에는 소를 이용해 밭을 가는 것이 생산적이라고 생각해서 소 도축을 엄격히 금지했는데요.

정조는 인부들의 체력 보충을 위해 수원에 한해서 이를 허가하기 이후 근처에 살던 백성들이 소를 잡아 갈비를 발라내기 시작했는데요.


그때부터 사실 수원하면 뭐가 유명하다 갈비


이것이 오늘날의 수원 왕갈비의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죠.

유네스코 문화재로 등록된 수원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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